정선옹주묘 신도비
정선옹주 묘역은 구로구 궁동 54의2호에 위치하고 있다. 정선옹주(貞善翁主)는 조선 제14대 임금 선조대왕의 7녀로 안동권씨 권대임(權大任)과 결혼하여 지금의 구로구 궁동 67번지일대에서 궁궐같은 기와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현재 궁동이라고 하는 명칭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정선옹주가 시집을 간 안동 권씨 집안은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권철(權轍)과 그의 아들로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의 대공을 세운 도원수 권율(權慄)이 있다. 또 영의정을 지냈던 이항복(李恒福)은 권율의 사위로 역시 이 집안과 관련이 있다. 정선옹주의 남편인 권대임은 안동 권씨라는 집안의 배경을 갖고 있었을뿐만 아니라 글씨 또한 잘 써서 선조의 총애를 받았다. 여기에선 무공신의 칭호를 받고 예조판서를 지낸 권협(權협)의 손자이며 부인 또한 임금의 딸이라 그의 집은 가히 궁궐 못지 않았으며 때문에 궁동이라는 명칭이 유래된 것이다. 묘역에는 정선옹주와 그 남편 권대임의 묘를 비롯하여 여러 기의 안동권씨의 무덤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흔히 풍수가에 의해 명당중의 명당으로 꼽힌다. 궁동의 북쪽 끝 와룡산을 주산으로 하여 동쪽으로 뻗어 내린 줄기가 좌청룡(左靑龍)을 이루고, 와룡산 서쪽으로는 궁동 서부를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우백호(右白虎)를 이룬다. 주산에서 좌우로 뻗어 내린 산줄기의 한 가운데를 다시 짧은 산줄기가 남쪽으로 뻗었고, 그 끝에 저수지가 있다. 고추처럼 생긴 그 산줄기가 낮은 언덕을 이룬 곳이 궁동의 한 복판이다. 이것이 풍수지리설에서 ``금닭이 알을 품은 형국`` 즉 금계포란형(金鷄包卵型)으로 찬탄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 고추 모양 언덕 끝 부분에 안동권씨 문중묘가 있으니, 누가 보아도 명당 중의 명당이다.
궁동 명당의 혈이 되는 이 권씨 문중묘는 그 고추 끝 부분의 10m 폭에 약 150m 가량 길게 남북으로 뻗어 내린 언덕에 위로부터 아래까지 모두 8기의 무덤이 있다.
제일 위의 것이 권대임의 할아버지인 길창군(吉昌君) 충정공(忠貞公)권협과 정경부인 전주 최씨(全州崔氏)의 무덤이다. 그 아래에 부마도위(駙馬都尉) 길성군(吉成君) 권대임과 정선옹주의 무덤이 있는데, 권협의 무덤보다 규모는 크지만 비석이 작고 비문도 간략하다. 권대임의 아래에 아버지인 길흥군(吉興君) 권신중과 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의 무덤이 있다. 그 아래는 권대임의 아들 권진(권진)과 부인 남양 홍씨(南陽洪氏)의 순서로 되어 있는데, 권대임과 아버지 권신중의 순서가 바뀌었음이 눈에 띤다. 이는 권대임이 왕의 부마라는 특례를 인정하여 부자간의 순서를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묘역 아래 저수지가 있었던 언저리를 비석거리라고 하는데, 남쪽끝에 권협의 신도비가 있고, 서북쪽 끝에도 새로 세운 비가 있다. 정선옹주 묘역 내에는 신도비 외에도 이같은 묘비 등이 다수 남아 있어 당시 묘제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